[IWPC 2026④] 분쟁 현장 여성의 증언과 ‘평화 저널리즘’ 부상
2026.09.18
9월 18일, 국내외 취재진과 해외 여성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의 주제는 ‘평화를 위한 여성의 연대와 미디어의 역할’이었다.
예멘, 에콰도르, 케냐,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여성 리더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마주한 분쟁과 차별, 사회적 갈등을 이야기했다. 전쟁이 끝난 뒤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 사회적 약자와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의사결정에 담을 것인지, 혐오와 분열이 실제 충돌로 번지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전쟁이 끝나도 일상은 저절로 돌아오지 않는다
첫 번째로 발제에 나선 전나영 IWPG 대표는 ‘여성평화와 미디어의 역할’을 주제로 언론이 분쟁의 피해뿐 아니라 그 이후의 회복 과정까지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언론은 사건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국제 분쟁과 갈등을 보도하는 언론이 충돌과 피해뿐 아니라 갈등을 멈추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과정과 평화의 가능성도 함께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대표는 “갈등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다 온전히 보여주자는 것”이라며 “비극적인 모습뿐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를 회복하고 삶을 재건하며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까지 함께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시선의 변화도 강조했다. 전 대표는 “전쟁과 분쟁의 피해자로서 여성을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고, 여성이 갈등을 중재하고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연결하며 일상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IWPG의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예멘의 아흐드 모하메드 살렘 자아수스 여성정책 국무장관도 전쟁 이후의 평화를 ‘일상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했다.
자아수스 장관은 ‘전쟁터에서 복원하는 일상: 예멘 내전 속 지방행정과 여성 거버넌스’를 주제로 발제하며 전쟁이 끝나는 것만으로 평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학교와 보건소가 다시 문을 열고 공공서비스와 기반시설이 복구되며 주민들이 안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여성을 평화 구축과 사회 재건의 주체이자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의 참여 역시 형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자아수스 장관은 여성들이 지방의회와 공공서비스 기관, 지역사회 활동, 중재와 분쟁 해결 과정 등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과제는 지방행정의 역량 강화, 여성의 실질적인 의사결정 참여, 평화와 회복을 조명하는 책임 있는 언론이었다. 자아수스 장관은 특히 언론을 향해 “예멘은 무엇보다 삶을 간절히 갈망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전쟁과 사상자, 난민과 위기만으로 예멘을 설명하기보다 일하는 여성과 배우는 어린이들,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는 지역사회의 모습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단순히 전투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고 환자들이 제때 치료받으며 가족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고, 여성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청년들이 고국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일상이 돌아왔을 때 비로소 예멘의 진정한 평화가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에콰도르에서는 여성과 원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정치 참여의 장벽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문제가 제기됐다.
디아나 카이사 에콰도르 암바토 시장은 ‘유리천장을 깬 원주민 여성 시장: 다양성과 포용의 평화’를 주제로 자신의 정치 참여 경험과 포용적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했다.
카이사 시장은 2023년 암바토 역사상 첫 여성·원주민 시장으로 당선됐다. 그가 정치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는 원주민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 침묵을 강요하는 장벽이 존재했다.
그는 “유리천장을 깬다는 것은 한 여성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 전통과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고도 그 벽을 넘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조건에 대해서도 전쟁의 부재만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카이사 시장은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라며 출신과 성별, 문화적 배경을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여성과 원주민, 농촌 주민, 청년 등 충분히 대표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경험이 공공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교육과 리더십 기회를 보장하고, 정치·경제·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실질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한편 한 여성의 성공이 다른 여성의 기회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카이사 시장은 자신의 경험이 한 사람의 예외적인 성공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깨진 유리천장이 모든 여성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창이 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파우지아 쿠피 아프간 여성연합 대표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실제 협상과 의사결정의 자리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직 국회의원이자 여성 인권운동가인 쿠피 대표는 과거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직접 참여했다.
그는 “여성이 존재할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며 “내 남편의 죽음과 수천 명의 희생, 나 자신의 교육 기회를 빼앗은 바로 그 집단과 협상해야 했다”고 말했다.
협상에 참여하기 한 달 전 탈레반의 공격으로 오른손에 총상을 입었지만 협상장에 들어갔다고도 밝혔다. 쿠피 대표는 “처음 협상장에 들어갈 때 망설였지만, 나는 내 나라와 전쟁의 희생자들, 특히 여성들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가치와 견해를 가진 세력 사이에서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서로 다른 견해와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도 대화해야 하며, 공존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혐오와 분열, 충돌 전에 막아야
케냐에서는 갈등이 폭력으로 번진 뒤 대응하기보다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대응하는 사회통합 전략이 제시됐다.
케냐 국가통합화해위원회(NCIC) 의장인 케파 N. 오마에 박사는 ‘분열과 혐오 표현을 넘어서: 사회적 통합을 위한 전략적 리더십’을 주제로 발표했다.
오마에 박사는 2007~2008년 케냐 대선 후 폭력 사태를 계기로 NCIC가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약 1,300명이 숨지고 약 65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는 케냐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공동체가 공존하는 사회인 만큼 정치적 경쟁 과정에서 민족적 배경과 지역 언어를 이용한 동원, 혐오 발언과 선동이 공동체 간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치 행위자의 책임 있는 언어 사용과 함께 청년과 여성의 참여, 디지털 공간의 허위정보와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을 갈등의 도구가 아닌 평화 구축의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NCIC는 청년을 평화의 대사로 육성하고 디지털 공간에서 허위정보와 오정보, 악의적 정보, 혐오 발언과 선동의 확산에 대응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여성과 청년, 학생들이 갈등 가능성을 조기에 파악하는 조기경보 체계에 참여하는 방식도 소개했다. 폭력이 발생한 뒤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신호를 먼저 발견하고 대응하는 방식이다.
오마에 박사는 종교 지도자와 시민사회단체, 국가기관의 협력도 강조했다. 어느 한 기관만으로는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언론과 종교 지도자, 공직자, 국제사회, 개발 파트너, 시민사회와 국민 모두가 평화로운 사회의 기반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쿠피 대표 역시 국제사회와 언론이 분쟁 이후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 재집권 이후 여성과 소녀들의 교육과 사회적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아프간 여성들을 단순한 피해자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쿠피 대표는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라며 아프가니스탄 안팎의 여성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망명지에서 온라인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등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주의 회복은 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안보에도 중요하다”며 한국 국민들에게 아프간 여성들과 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아프간 국민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며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세계의 평화”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여성 리더들과 언론인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분쟁 지역의 여성 인권, 정치 참여, 지역사회 회복, 미디어 보도에 관한 질문을 주고받았고, 이후 개별 인터뷰와 네트워킹을 통해 구체적인 현장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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